홍살문 그 모양과 유래에 대한 살핌

홍살문 그 모양과 유래에 대한 살핌

홍살문, 왕릉 입구의 문, 일본 신사의 입구의 장식문, 이러한 것들을 자세히 보면 어딘가 닮은 점이 있다.

궁전·관아(官衙)·능(陵)·묘(廟)·원(園) 등의 앞에 세우던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 홍전문(紅箭門)·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9m 이상의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박아 놓고,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이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한국에는 대체로 ‘홍살문’이라하여 능묘 또는 향교, 열려문 등에 설치된 형태는 조선시대에 와서 정착된 모양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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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 형태

세로로 2.4m~3m간격으로 세운 두 개의 기둥 위에 가로로 두 개의 보를 걸치고 보사이에 창살을 끼운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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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앞에 세워진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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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세워졌던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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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이 집중되어 세워진 시대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금의 형태로 관아와 능묘 뿐만 아니라, 서원, 마을,개인집에까지 분포될정도로 흔하게 세워졌다.
형태 또한 고려시대에는 창살이 없었다고 하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창살과 태극문양 등이 추가 되면서 크기 또한 거대한 것도 세워졌다.

  ■ 의미

홍살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한 곳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설치 장소 또는 설치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체로 중요한 시설물이 있고 보호해야할 시설물로 신성시 하는 곳에 들어가는 경계지점(출입지점)에 설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보아서는 적어도 홍살문이 설치된 곳은 경계안에는 중요시설 또는 보호해야할 신성한 시설물이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 유래 및 이웃나라 유물과 친연성

홍살문의 의미가 명확히 전해오지 않는 것 처럼 그 유래도 명확하지 않으며, 비슷한 형태, 비슷한 사례가 곳곳에 있어 짐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 황하문명에서 유래하였다는 가설

전통에 관한 것을 그 유래를 찾을 때 대체로 황하문명(지금의 중국)에서 찾는 경우가 많아, 홍살문 또한 황화문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잘못된 짐작이라 여겨진다.
지금의 중국에서 찾을 수 있는 홍살문의 형태는 한국의 것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다만 중요 시설문 입구의 출입문 형태로 두 개의 기둥을 세운 시설을 볼 수 있으나, 그 위에 지붕을 올리거나, 명패(간판)를 부착하기 위한 형태로 홍살문의 원형이거나 변형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황하문면권에서 유래하지 않았고, 오리려 한국의 홍살문이 황하문명권에 일정한 영향을 기쳐 지금의 중국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출입문 형태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중국에서 유래한 정려(旌閭)문 또는 홍문(紅門)과 서로 섞여져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 일본의 도리이

일본의 신사 앞에 세워진 도리이(鳥居)는 우리나라 홍살문의 형태와 크기는 아주 비슷하며, 도리이가 설치된 장소는 신사 또는 궁의 입구로써 신성한 장소의 입구라는 점도 홍상문의 의미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다만 형태면에서 일본의 도리이는 창살이 없으며, 두 개의 보를 하나는 기중을 가로 지르고 하나는 기둥위에 얹어두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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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사에서 볼 수 있는 도리이의 모양은 한국의 홍살문에서 유래하였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문화의 흐름이 어느 일방일 수 없기 때문에 종교(신앙)의 의미에서 출발한 것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전달된 문화의 일부가 변화되어 종교시설물이 있는 곳에 홍살문 형태인 도라이가 설치 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 솟대

고대 소도(蘇塗)에 세워둔 것으로 알려진 솟대의 의미는 홍살문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솟대는 한국의 남부지역에 집중하여 분포하였고 북쪽으로 갈수록 드물 게 보여진다.

솟대와 홍살문은 형태면에서 사뭇 다르나 기둥을 세우는 것과 신성한 곳의 표식으로 삼는 점은 같다고 볼 수 있기에 홍살문과 어느 정도 문화섞임이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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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의 일주문

한국의 사찰 입구에 위치한 일주문이 홍살문 형태와 비슷한 면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만들어져 있어 지붕이 없다면, 그 위치와 의미가 홍살문과 비슷하다. 같은 사찰의 일주문이라도 중국의 사찰의 경우 삼문(三門)형태가 많으므로 한국의 사찰의 일주문은 어느 정도 홍살문 형태 요소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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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아시아 문화에서 흔적

아무르강 유역에 거주하는 어룬춘족[卾倫春族(악륜춘족)]이 사냥을 하여 멧돼지를 도살하고 난뒤 의식을 올리는 과정에 사용하는 것으로 오른쪽 그림과 같은 도구가 보인다. 도구의 형태는 반원형태의 활모양이며 가로 막대에 나무문양을 한 창살 다섯개가 붙여둔 형태이며 자작나무 높은 가지에 걸어둔다.
홍살문과의 비슷한 면은 기둥이 없다는 것이나, 이는 휴대에 편하도록 기둥을 색량하는 대신 자작나무 높은 곳에 걸어둔 모양은 창살모양 나무 문양이 있어 거의 홍살문을 그림을 쉽게 끄집어 낼 수 정도다.
또한 주술과 종교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 홍살문의 의미와 같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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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

 △ 홍살문의 성격

홍살문의 유래는 흔히 알고 있는 유교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명백히 아니며, 오히려 후대의 유교문화와 결합되어 홍문,홍살문,정려문 등의 형태로 다시 만들어진 경우라 보인다.

홍살문은 시대별 지역(나라)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 쓰임새와 의미 또한 조금씩은 다르나, 다음에 열거한 요소가 같다.

1. 두 개의 기둥을 가지고 폐쇄형으로 세워졌다는 것

2. 출입의 경계를 짓는 문(問)의 구실을 한다는 것

3. 안쪽과 바깥쪽을 경계 짓고 경계안은 신성한 지역이라는 걸 표시한다는 것

4. 종교,신앙,주술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

위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홍살문의 형태의 분포는 동북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는 문화현상으로 국가가 성립되기 전부터 전해오는 문화지표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종교/신앙으로 불리우는 샤먼과도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  과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온 홍살문은 동북아시아의 또하나의 문화지표로서 아직 많은 부분을 다시 살펴봐야 할 과제이며, 이 과제를 통해서 한국의 고유문화와 동북아시아의 고대문화를 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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